에스겔 16장 6절
개역개정: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새번역: 내가 지나가다가, 네가 피투성이로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네게, "너는 피투성이지만 살아 있어라. 너는 피투성이지만 살아 있어라" 하고 말하였다.
서론:오늘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읽기 불편하고 충격적인 본문 중 하나인 에스겔 16장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이 장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마치 버려진 아기를 구하고 사랑으로 키워냈으나 결국 배신당한 남편처럼 분노하시는 모습에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때로는 우리의 신앙적 감성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이 불편한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공의가 어떻게 함께 드러나는지 깊이 통찰했습니다. 그들은 이 본문을 단순히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안에서 하나님과 우리 개인의 관계, 그리고 그분을 향한 우리의 배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오늘은 그들의 시선을 통해, 이 오래된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1: 버려진 존재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
에스겔 16장의 이야기는 한 버려진 아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녀는 탯줄도 끊지 못하고 피투성이인 채 들에 버려졌습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버려진 존재를 발견하시고, 그녀를 살려주며, 깨끗이 씻기고, 아름답게 꾸며주셨습니다. 그녀는 버려진 존재에서 왕비와 같이 존귀한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루살렘의 역사를 넘어섭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십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었고, 세상의 어떤 가치도 우리에게 참된 의미를 줄 수 없던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생명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씻으시고, 존귀한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가끔은 부모로 인해 자녀들이 피투성이로 버려진것 같은 상황에 빠질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지나보면 그 비참한 가운데 부모도 돌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돌보시고 아이의.미래를 위해 준비해 두심을 보게 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성취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가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피투성이 같은 나를 하나님이 일마다 때마다 지키고 보호하시고 길열어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 우리의 삶 자체는 버려졌던 우리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좋은 것은,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오직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2: 언약을 배신한 존재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와 궁극적인 용서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다운 여인이 된 이스라엘은, 그 아름다움과 부유함을 믿고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그녀는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창녀 처럼 다른 나라와 우상을 좇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배신에 대해 극심한 분노를 표현하시며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에스겔 16장 26-29절은 그 배신의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개역개정: 네가 또 음란하여 애굽 사람과 통간하되 육체가 장대한 그들과 함께 음란하여 나의 노를 격발하였도다... 네가 또 앗수르 사람과 음행하여도 만족하지 못하여 그들과 음행하고도 오히려 부족하다 하니 네가 또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음행을 더하매 이것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였느니라.
새번역: 너는 또 육체가 장대한 이집트 사람과 음란한 짓을 하였다. 그렇게 음란한 짓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켰다... 너는 앗시리아 사람과도 음란한 짓을 하고도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과 음란한 짓을 하고도 아직도 부족하다고 하였다. 너는 또한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가서 음란한 짓을 더하고도, 오히려 만족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분노가 이토록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이 분노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배신에 대한 분노도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느끼는 고통과 분노는,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반증합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바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크신 사랑의 증거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종종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배신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을 나의 공로로 돌리고, 하나님의 자리를 세상의 다른 가치들(돈, 명예, 쾌락, 안정)로 채울 때, 우리는 에스겔 16장의 여인처럼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반전은 마지막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시지만, 결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16장 60절입니다.
개역개정: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새번역: 그러나 나는 네가 젊었을 때에 너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하나님의 진노는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분의 분노는 결국 용서와 긍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처음의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죄악으로 인해 버림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겠다는 그분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에스겔 16장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확증해 줍니다. 첫째,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자격이나 공로가 아닌, 버려졌던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영원한 언약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 삶의 근원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참된 모습입니다. 아멘.
카테고리 없음